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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민들이 국가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시대정신을 공유하기 위한 기초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역사인식이라고 본다. 광활한 바다나 사막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였을 때 북극성이나 나침반에 의존하듯이 역사인식은 혼돈의 현실세계에서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하기 위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배는 정처 없이 표류하는 통나무와 똑같을 수 없다. 역사인식은 과거에 대한 기억력, 현재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기초로 한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인식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우리를 존재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처지는 어떠한가, 그리고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가치판단인 것이다.
요즈음 일요일이면 필리핀 근로자들이 서울 혜화동 성당 부근에 모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40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근로자들도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대표적인 것이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이다. 서독으로 근로자를 파견할 당시인 1963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이 257달러, 한국은 79달러로 필리핀이 3배 이상 잘 살았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으로 유학을 갈 형편이 되지 못한 학생들에게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은 최고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한 광화문의 주한미국대사관을 필리핀 건설업체가 지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본부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정한 사실이 당시 필리핀의 번영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후 필리핀의 역사는 조그만 성취에 도취되어 방심할 경우 언제든지 발전의 대오에서 탈락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태국과 우리는 1997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자세는 태국이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 있다. 왜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 등을 가리기 위해 태국은 국가적으로 대처하였던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태국은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누클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분야에서 존경을 받는 7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누클커미티’‘누클 커미티’를 만들었고, 98년 5월 ‘누클보고서’‘누클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에 대해 국내외에서 이의제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외환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체계적, 이성적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놓고 정치적 공방은 벌였지만, 태국과 같은 범국가적 노력은 없었다. 고통과 회한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국가와 그것을 서둘러 망각하는 국가 중 누가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인가는 자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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