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세기 전 우리 조상들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어두운 채 국가진로 설정을 놓고 우왕좌왕하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선진국들이 비행기를 띄우며 맞은 20세기를 고작 소달구지를 끌며 맞이한 피폐한 국력 탓이었다. 그때 만약 우리 조상들이 조금만 더 일찍 시대변화에 눈을 떴더라면, 그리고 일본처럼 조금 더 발 빠르게 근대화를 시작했더라면 이후 우리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구한말 역사를 읽다보면 한 세기 이전이 아닌 오늘의 문제들을 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100년 전에는 서구열강과 청, 일 두 나라가 조선의 존립을 위협했다면, 지금은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한반도 안보의 최후 보루인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1997년 사망한 중국의 등소평은 '향후 100년 간 미국에 맞서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거대 자본과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있는 이상 패권을 추구해서 얻는 이득은 없다고 본 것이다. 하물며, 경제는 물론 안보마저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국익을 지키는 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둘째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1세기 전 우리 선조들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쳐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를 거쳐 지능화사회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자성해볼 일이다. 미국은 물론 동남아국가들에서도 사업화가 되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벤처사업이 한국에서는 불법화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하자. 새로운 비즈니스가 택시업계에 위협인 것은 틀림없으나 언제까지 진입규제로 대응할 것인가.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그때는 또 어떡할 것인가. 신기술, 신사업의 도입으로 피해를 입는 계층에게 누가, 어떻게 보상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킬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혁명이 기술혁신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주식회사제도, 회계시스템, 노동조합, 노동법, 상법, 의무교육 등과 같은 사회인프라와 사회제도의 혁신의 뒷받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장제 정규직 근로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을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는 현실에 맞춰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도 구한말과 오늘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도층의 무능과 분열, 국제감각의 결여, 그리고 국민들이 무기력한 방관자로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이다. 구한말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며 서구열강을 오랑캐로 얕잡아보고 문을 걸어 잠그고 이대로, 우리끼리를 외쳤다. 지나고 보면, 결국은 조선의 지배층이 누리던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려다 한반도 전체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되는 역사적 비극을 마주하고 이것이 분단으로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국가, 민족, 국민, 국익을 앞세워 변화와 개혁을 저지하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때늦은 좌우 이념대결로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대미관계, 경제발전전략, 기본소득, 정부의 역할 등을 둘러싼 갈등은 한계수위를 넘어섰다. 이것은 마치 구한말 국가발전 방향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가 결여된 채 위정척사파, 개화파 등으로 갈라져 우왕좌왕하면서 허송세월 했던 100100여 년 전 조상들의 모습과 흡사한 형국이다. 앞으로 100년의 질서를 만들지도 모르는 엄중한 시기에 국가전략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과 고민은 없고 진영논리로 도덕성 논란만 벌이는 것은 실익이 없다.

 
댓글